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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1942년생 어머니 이야기 - chapter 1

by 한량으로 살고파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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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생 우리 어머니.

8살 되시던 해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를 여의시고 작은 삼촌과 막 돌 지난 막내 이모를 돌보셔야 했다는 옛날 이야기를 하실 때면 눈가가 촉촉히 젖어 오시곤 한다.

집안에서 제일 인물도 좋고 머리도 똑똑하셨다는 큰 삼촌은 6.25 이후 소식이 끊겨 아마 돌아 가셨을 거라 생각하시며 그리워 하지도 않았는데, 남북 이산 가족 상봉에 혹시나 신청을 하셨다가 연락이 닿아 금강산에 이모님들과 같이 가셔셔 만나 뵙고 오셨다.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60년 묵은 슬픔을 울음이 그치지 않게 토해 놓으셨을까?

북에서 잘 되셨다는 큰외삼촌은 70을 넘기신 나이에도 풍체가 좋으시고 안색도 좋아 보이셨다.

만날 당시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던 큰외삼촌도 개별 상봉에서는 눈물을 보이셨다는데.....,

 

못난 아들의 이혼 후 손자를 챙겨 주시려 서울로 올라 오신 어머니는 가끔씩 작은 이모님 댁에 가시자고 하신다.

오가는 차안에서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8살 어린아이가 무얼 알았겠니.

할아버지 밥을 해드리는 데 반찬이 없어서 밥만 올려 드리기도 했단다.

우리 아버지는 집안일은 신경도 안쓰시고 돈만 생기면 술마셔 버리고, 어린것을 어디 때릴 때가 있다고 술마시고 오면 장작으로 패대는데,  그게 싫어서 어린 동생 데리고 식모 살이를 나왔단다."

 

어느덧 눈가엔 눈물이 보이신다.

 

"작은 이모는 먹지를 못해 빼빼 말라 죽는 줄 알았단다.

먹을게 없으면 이웃집에 동냥하러 가서 찬밥을 얻어다 동생들 먹이곤 했단다.

돌 지난 이모를 등에 업고 식모 살이를 하는데 주인 눈치가 얼마나 보이는 지.....,

큰 이모는 열다섯살에 한 입이라도 덜을려고 민며느리로 시집을 가버리시고,

작은 외삼촌은 그 어린 나이에 남의 집 머슴살이 나갔지.

아버지 돌아가셨을 땐 눈물도 안나오더라."

 

그 당시 아버지들은 왜 그렇게 아이들을 때렸는지....,

아마 사회가 사람들을 그렇게 황폐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전쟁 끝나고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

아이들 먹거리 보단 자신들 허전한 마음을 풀어줄 술 한잔이 더 필요하셨나 보다라고 이해하려 해도

다 이해가 안된다.

왜? 아이들은 또 그렇게 때렸었나.

그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보면 때릴 수 없었을 텐데.....,

 

"하루는 매파가 와서 사람 좋고 성실하다며 선을 보라고 해서 니네 아버지하고 선을 보았지.

그 말만 믿고 결혼했는데 집 한칸 없지 시집 못 간 시누이들 세명하고 신혼방 한 칸에서 살아야 하는데 말도 안 나오더라.

시누이들이나 얌전했나.

술 먹고 들어와서 내 머리체를 휘어 잡지 않나.

내가 전주집을 살 때 돈이 부족하여 큰 시누이에게 돈 빌리러 갔는데 차마 돈 빌려 달란 이야기가 입 밖으로 안 나오더구나.

그런데 큰 시누는 "언니 나 돈 없어" 하며 매정하게 돌아서고 그 멀리 서울까지 갔는데 간 길로 바로 돌아와야 했단다.

그렇게 어렵게 집 장만해서 빚 갚아 내 집 마련했는데 둘째 시누는 그 집 담보로 돈 빌려 달라해서 못해준다니까 술 먹고 얼마나 행패를 부리던지."

 

우리들 때문에 사셨다는 어머니.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몇일씩 일을 안나가시고 어머니는 그 뒤치닥거리 하시고.....,

여 동생을 낳으셨을 때는 집에 쌀이 없어 회복간도 못하고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그 때 먹은 라면이 체해 지금도 라면을 못 드시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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